어릴 적 내 몸에서 가장 크게 울리던 소리는 ‘꼬르륵’이었다. 수업 시간 조용한 교실 안,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내 배 소리에 얼굴이 화끈해지곤 했다. 배고픔은 그저 피곤하고 귀찮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하루의 흐름을 알려주는 리듬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 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성인이 된 나는 항상 뭔가를 입에 넣고 있었다. 정식 식사가 아니더라도 커피, 과자, 견과류, 심지어 그냥 심심풀이로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식사와 간식 사이의 경계는 흐려졌고, 배고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은 이미 20년도 넘게 먹지 않고 있다. 처음엔 단지 바쁘고 귀찮아서 거르게 된 거였는데,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를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점심이었다. 사회생활 속 점심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관계’였다. 팀원들과의 식사, 회식 아닌 회식, 자리를 지키는 무언의 의무. 어느새 ‘점심시간’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시간에 맞춰 주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또 하나의 역할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배가 고파서 먹는 걸까? 아니면, 먹는 척을 하며 그 자리에 있는 걸까?” 이 질문 이후, 점심도 점점 피하고 싶어졌다. 내 몸은 사실 별로 원하지 않는데, 습관과 눈치로 채우는 식사. 그게 점점 버거워졌다. 그리고 우연히 시작한 간헐적 단식. 처음엔 습관처럼 아침을 챙기지 않자 어딘가 허전했고, 머리도 멍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그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아, 너 아직도 있었구나. 그 소리는 단지 위장이 비었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그건 내 몸이 깨어있다는 신호였고, 내가 무언가를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소리였다. 잊고 있던 나의 리듬, 나의 생체 시계가 다시 고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그 소리가 반갑다. 그건 내가 불필요한 음식들로 내 몸을 무디게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나의 절제와 선택이 다시금 나를 주인이 되게 했다는 증명이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 그것은 다시 돌아온 나의 몸의 언어, 나 자신과의 대화다. 간헐적 단식은 단순히 체중을 줄이거나 식사 시간을 제한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무시해왔던 내 몸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경험이었고, 습관이라는 이름 아래 무심코 반복하던 것들에 물음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배고픔을 감각하고, 그것을 기다릴 줄 아는 나를 보며 나는 조금 더 가볍고 단단해진다. 결국, 단식은 ‘먹지 않음’의 기술이 아니라 ‘나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jin-o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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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 • 28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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